꿈꾸는 세탁소 책 / 청어 > 도서

본문 바로가기

도서

꿈꾸는 세탁소 책 / 청어

땅끝
2023-03-21 06:56 453 0

본문

꿈꾸는 세탁소
9791168550940.jpg


도서명 : 꿈꾸는 세탁소
저자/출판사 : 김경린,문효치,민용태,권희경,김영자,박일중,박향숙,이, 청어
쪽수 : 112쪽
출판일 : 2022-11-22
ISBN : 9791168550940
정가 : 10000

**동백꽃

누구를 위해
이 가지 끝에 매달려 있어야만 하는가

누구를 향해
이 한자리에서 웃고 있어야만 하는가

하늘이 저렇게 넓고 푸르러
날고 싶은데,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데

처마 밑에 매달려 있는 풍경은
마음대로 울기나 하지
나는 울고 싶어도 요렇게 웃어야만 하는가

마침내 웃을 힘마저 사그러지면
함묵으로 그냥 떨어져야 할 뿐
떨어져서도 웃는 척하고 있어야 할 뿐

**가을 시

가을 시를 쓰는
내 손가락을 본다. 마른 가지 손가락이
컴퓨터를 맡고, 나는 그저 나무 위에
올라앉은 가을. 서글프리만큼 고운
초승달을 본다, 그믐달
닮은 초승달은
현기증 나게 아름다운
소녀의 속눈썹

내 시는 다 잃고 우는, 웃는
산골짜기 물소리

**리본

한 마리의 파아란 나비가
길을 헤매다가
검은 꽃가루에 미끄러진다

날개깃에 자유를 가다듬고
창공에 솟아 난초 가지를 휘감으며
열린 가슴을 마구 들이킨다

소녀의 눈가에
흰 빛이 파도를 탄다

**꿈꾸는 세탁소

얼룩들은 구석을 찾아서 모여 든다
깊이를 알지 못하는 구멍도 슬쩍 끼어들고 있다
공중에 매달린 걸음들이 절룩거린다
낯부끄러운 표정들은 어깨 뽕을 유지하려고
목을 가누지 못하고 있다
유난히 구겨진 얼굴은 강한 스팀을 넣어둔다
어스름에 바짓단만 갉아먹는 아버지
자식에게 힘찬 다리가 되어 줄 수 없다
세우려 해도 등뼈는 풀이 죽어 있다
만년 부장 밑에서 유효기간 이년짜리
재계약서가 주머니에서 보풀로 일고 있다
진흙투성이가 되어 터지던 핏줄들이
빨래 통에 옹기종기 모여 든다
목둘레에 날 선 핏대들을 문질러 주며
물기 많은 몸들을 뒤집어서 탈수 한다
주눅 든 어깨들은 생기를 분사 한다
두꺼운 그늘에 가려진 채 옥신각신하는
가족들을 꺼내어 햇볕으로 불려준다
비틀거리던 다리들을 꼿꼿이 세우며
내일의 주름은 지우고 다려준다
단추와 구멍이 서로를 보듬어
칸칸이 반짝이고 있다
뽀송한 매무새들이 당당하게 걸어 나온다

**일기

떠날 때는 가슴만 남습니다
웅크린 것만 남습니다
무엇이 사는 데 중요했는지
떠날 때는 가슴에 남습니다

인연도 그랬습니다
만남과 헤어짐, 둘은 연인입니다
보고 싶은 것만 봤습니다
작은 목소리라도 사랑한다고 전해야
했습니다
보고 싶다고 한 줄이라도
건네야 했습니다
이별도 준비해야 했는데 두렵기만 했습니다

사랑한 것만
웅크린 건 아니었습니다

**그대는 누구

파란 불꽃 위에 올라 앉아
가쁜 숨 뿜어내며
속을 끓이면서도
다시 또 오르기 위해
정갈하게 몸을 씻고
엎드려 기다린다

벗겨진 상처에
소금을 뿌리고
고춧물이 스며도
비명은커녕 미동조차 없다가도

식탁에 솟아나는 웃음소리엔
반짝 미소를 발하며
통째로 속을 내주는
그대는 누구?

**대선 그 후

찬바람 속
알몸으로 관통한 세월의 줄기에
초록 잎새가 돋았다

비로소 하늘이 보이고

더운 날 처음 빗방울 사이로
살짝 풍기는 훈기처럼
안도감이 하루를 채운다

꽈리처럼 오므라들었던 일상이
다시 기를 펴고
오랜 친구를 불러
소주라도 한 잔 하고 싶은 오늘
유난히 햇살이 정겹다

아직도
여기저기 어둠을 먹고 자란 잡초들 섞여 있지만
쟁기로 갈아내면 그뿐

한결 가벼워진 마음에
세상을 담는다

**산골풍경 1,355

불어오는 봄바람에
노래가 흘러나와요

연분홍 박자에
함박꽃 음성

불어오는 봄바람에
노래가 흘러나와요

봄바람에
흘러나오는 저 노래는

봄바람만 알고 있는
나의 비밀입니다

**모래성

적이 쳐들어온다
성을 사수하라
아이들이 위험하다
일곱 살 꼬마 성주의 다급한 외침

성을 견고히 해야 합니다
방어막을 쌓을까요
할머니는 바쁘다
제1 제2 제3 방어막 진지 구축

몰려오는 파도
방어막과 모래성 한꺼번에 쓸어가 버린다

두 손 놓고 주저앉아
망연히 바라보는 바다
헐~
허얼~

**연가

문득, 향기처럼 온 설렘이야

떨림이 고이다 못해
눈감아야 만져지는 사람아

밤새워
선홍빛의 들풀로 쓴

사랑 초서가
차마 부끄러워 살라 버리고

그대의 손바닥에 얹는
새빨간 단풍 한 잎

내 더운 가슴이야

**슬프도록 아름다운

띠동갑 내 동생이 운전하고 부산오빠들
뵈러 가는데

바른편 을숙도 공원
그 방대함에 놀란 가슴

괴정동 새릿골은
내 소녀의 슬픈 꿈이 서러워

장기려로에서
고인의 인술은 피어나고

2박 3일 승학로를
안 스친 적 없어도

35년 전부터
교회와 함께 하는
사하복지센터

생명은 무엇으로 피어나는가




image.jpg





image1.jpg




댓글목록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게시판 전체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