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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역 촌은집

로즈
2023-11-24 05:31 299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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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역 촌은집
9791165874087.jpg


도서명 : 국역 촌은집
저자/출판사 : 유희경,저자,글,임종욱,번역, 보고사
쪽수 : 580쪽
출판일 : 2023-02-24
ISBN : 9791165874087
정가 : 38000

화보
발간사
촌은 유희경의 생애 연보

촌은집서 김창협
촌은집인 이경전

촌은집 권지일 村隱集卷之一
[오언절구]
중흥동에서
산에서 가을밤에
사계화
계랑을 생각하면서
계랑에게
한벽루에서
길을 가다가
황강에 밤비 내리는데
천마산에서 노스님과 헤어지면서
정양사 천일대에 올라
금강산에서 와서 수암 박지화 공을 뵈었더니 "마하연에서 하늘 음악을 들었는가?" 묻기에 시를 지어 대답했다
광주 동헌에서
송천 양응정 공의 운에 차운하여
[육언절구]
상국 신흠이 고향 김포로 돌아가신다기에
흥겨운 기분으로
[칠언절구]
영국에서
송좌랑 서실의 시에 차운하여
청풍 개울을 생각하면서
식영정에서
불정대에서 서좌랑과 헤어지며 그때 백대붕이 함께 했다
완평부원군 이원익 공에게 올린다
기성에서 학관 이달의 시에 차운하여
어촌에서
새하곡
탕춘대에서
양류사
우이동에서
계랑에게 주노라
길을 가다가
길을 가다 계랑을 생각하면서
여관에서 당시(唐詩)의 운을 차운하여
장난삼아 계랑에게 주노라 저물녘 길을 가면서
기름 종이 천막에 적힌 석천의 시에 차운하여
수안에서 눈(雪)을 노래하노라
생양관에서
이제묘에서
나그네 길에서
만월대에서
계랑에게 보내노라
이생원 별장의 시에 차운하여
상국 심희수 댁에서 소나무를 노래하다
공주 목백의 시에 차운하여 강정랑에게 드리노라
월계를 지나는 길에
용진에서 진관 벽상에 적힌 시에 차운하여
청평사에서
달밤에 족금 시냇가를 노닐면서
장덕옹에게, 겸하여 여러 벗에게 보인다.
영숙 최기남의 시에 차운하여
허생원과 이별하면서
정효순의 시에 차운하여 2수
창랑정에서 배를 띄우고
옥당에서 시운을 받아
허도사의 시에 차운하여
최감찰의 원림 연회에서
국화를 노래함
매죽헌의 시에 차운함
극적루 시에 차운하여
나그네 길에서 두견새 소리를 듣고
한가할 때 2수
동악 상공 이안눌의 수운정 시에 차운하여
이안눌의 원운
천수원 시에 차운함
동부도 벽에 쓰노라
귀한 손님 이재에게 삼가 올림
나그네 길에 중구일을 맞아
침류대 시에 차운하여
범사대에서 도일노사께서 오신 것에 감사하며
박좌랑 행헌에게 삼가 올림
해산정에서
사선정에서
청계서재 10영
1영(詠) 노계에 잔을 띄움
2영(詠) 상수리나무 숲에 술동이를 걸어둠
3영(詠) 영주월대
4영(詠) 수종폭포
5영(詠) 용산에서 고사리를 뜯음
6영(詠) 귀암에서 고기를 낚음
7영(詠) 만경의 빙굴
8영(詠) 서쪽 교외의 석양
9영(詠) 양곡의 풍림
10영(詠) 손암에서 이는 푸른 이내
마음을 담아서
식영정에서 제봉과 헤어지면서 고경명을 말한다
안동 이춘원 행헌에게 2수
연당의 시에 차운함
유성천의 시에 삼가 차운함
금릉 국촌에서 지은 팔영시
1영(詠) 화악의 맑은 이내
2영(봉주의 봄날 조수(潮水)
3영(詠) 동봉의 꽃잎에 걸린 달
4 부악의 소나무 물결
5영(詠) 동쪽 밭에서 밭갈이를 봄
6영(詠) 남쪽 연못에서 연꽃을 감상함
7영(詠) 뒷산 산사로 스님을 찾아감
8영(詠) 앞 시냇가에서 손님을 배웅함
스스로 처지를 읊으며
종상인의 시첩에 차운함
금아에게
박연폭포에서
만월대에서
남쪽으로 돌아가는 홍승지를 배웅하면서
느낌을 노래함
다시 계랑과 만나
배를 타고 가다 봉성촌에 닿아서
옥진을 애도하며
소암 임숙영의 유점사 시에 차운하여
한정자의 시에 차운하여 2수
꿈에 비로봉에 올라
용문사에서
청허루 시운에 차운하여
타향에서 자다가 거문고 노래 가락을 듣고
유교리의 시에 차운하여
관가정에서
칠월 보름날 밤에
지나는 길에 찾아준 사람에게 감사하면서
극적루에서 차운함
침류대 20영
1영(詠) 북악의 단풍
2영(詠) 남산의 푸른 아지랑이
3영(詠) 차계에서 빨래를 함
4영(詠) 휴암에서 나무하기
5영(詠) 산사의 저녁 범종 소리
6영(詠) 천단의 새벽 석경(石磬)소리
7영(삼산의 저녁 비
8영(詠) 만정에서 밥 짓는 연기
9영(詠) 상림에서 달구경
10영(詠) 어원에서의 꽃 감상
11영(詠) 꽃섬돌에 나비가 춤을 춤
12영(詠) 유시에서 듣는 꾀꼬리 노래
13영(詠) 옛 우물을 나는 가을 반딧불이
14영(詠) 신풍의 술집 깃발
15영(詠) 성령의 낙락장송
16영(詠) 곡성의 어스름 햇빛
17영(詠) 필봉에 눈이 그침
18영(詠) 어구의 홍엽
19영(詠) 서반에서 갓끈을 밞
20명(詠) 동쪽 냇가에 봄을 캠[봄맞이를 함)
호당 선안에 삼가 올림
눈 내리는 가운데 매화를 감상하면서
여든 살 세월을 무사히 보내고서
도봉서원에서 근백을 모시고 유상하면서 그때 양주 최사군이 함께 했다 2수
동교를 새벽에 지나면서
영국동 유거에서 차운함
충막재 시운에 차운하여 벗들에게 보여주다
나이 아흔에 탄식하노라
침류대에서 2수
꿈에 식영정에서 미녀를 보고
골짜기에서 일이 있어
지가운의 석가산에 쓰다
[오언율시]
청평사에서 김수재에게 드림
깊은 골짜기 정암의 무덤에 쓰다
그네타기
칠석날에
여강 강루에 있는 시에 차운함
완산에서 송어사에게 드림
남쪽으로 가다가
이학관에게 삼가 보냄
적멸암에 묵으면서
지족사에서
한산 객사에 붙임
고암 촌장에서
사미정에서
창랑정에서
탕춘대에서 술을 마시면서 윤자윤의 시에 차운하여
양수재에게
청평사에서
범헌을 보내면서
팔봉헌에서
성도사를 보내면서
남종사를 보내면서
송경 회고
탕춘대에서
중구일에 유문학을 모시고 북쪽 언덕에 올라
태고정에서 2수
침향 괴석
강정에서 쌍천 성여학의 시에 차운하면서
한생원의 시에 차운하여
정유년 9월 호위하여 성을 나와서
제목이 없음
다시 영광을 지나면서
진송정에서
원계의 옛 일을 회고하면서
이재 행헌에게 삼가 올림
남쪽으로 가다가
신계현에서 호위하다가 승전보를 듣고 기뻐 짓노라
호당의 여러 학사들에게
수안군에서 제야하면서 성어사를 모시고 우연히 읊다
화장사에서 묵으면서
용문사에서
봉황정에서
영월 동헌에서 차운함
마음을 담아 정효순에게 보냄
도봉서원에 묵으면서
강가 정자에서 성쌍천의 시에 차운함
진송정에서
봄날에 우연히 읊음
반송에 눈이 개인 뒤
연광정에서
[오언배율]
송백천 천장 만시(詩)
심정의 〈강정〉운에 삼가 차운함
삼가 지내면서 지난 번 운을 써서 차운함.
태풍당 이식의 〈화연명구일〉시에 삼가 차운함
중흥사 산영루에 올라
[칠언율시]
안삼척을 보내면서
총석정에서
이재의 시에 차운함
수림정 시에 삼가 차운함
중흥사에서 노닐면서
종사의 시축에 차운함
신판윤이 의주로 영위하러 가는 길에 삼가 올림 3수
백마강 회고시에 차운함
호당의 여러 학사에게 삼가 올림
완산에 머물면서
높은 곳에 올라
최영숙에게
도봉서원 시에 차운함
달빛에 꽃 그림자가 옮겨질 때 난간에 올라
정효순의 시에 차운함
조승지의〈강정〉시에 차운함
중구일에 높은 곳에 올라
청명일에 남산에 올라
서석산에서 제봉에게
악양루 장관이 천하에 전해짐
김정자에게 삼가 올림
함열 동헌의 시에 차운함
임정자의 옥진을 애도한 시에 차운함
순천 행헌에게 삼가 올림
양구 동헌에 적힌 시에 차운함
동지사의 행차에 올림 2수
동호의 시에 차운함
정효순의 시에 차운함
동악의 〈원리상춘〉시에 차운함
여러 상공의 계연에 삼가 올림
살아서 술 한 잔만 못한 것을
황수재의 〈삼청상춘도〉시에 차운함
직려에서
오산 차천로가 〈탄은산수도〉에 쓴 시에 차운함
이시잠이 쓴 〈구로계병시〉에 차운함
중흥사에서 묵으면서
월출산 도갑사에서 박사상의 시에 삼가 차운함
[오언고시]
산수음
삼오칠언
연구
촌은집발 이여고

촌은집 권지이○부록 村隱集卷之二○附錄
전기 유몽인
묘표 김창흡
묘지명 병서 홍세태
행록 남학명
유사

촌은집 권지삼○침류대록 村隱集卷之三○枕流童錄
침류대기 소암
침류대기 이수광
침류대기 조우인
침류대기 성여학
침류대 주인에 드리는 서 김현성
유침류대서 조우인
제침류대기후 미상
[酬唱詩]
서문
동해산인 소암
침류대 주인에게 (소암)
차운함(촌은)
침류대에서 (오산)
차운함(소암)
차운함(촌은)
운을 불러 지음(소암)
차운함(오산)
차운함(촌은)
침류대에서(촌은)
차운함(지봉) 3수
차운함(현옹 신흠)
차운함(손곡 이달)
차운함(북촌) 2수
차운함(녹문 홍경신)
취하여 침류대 주인에게 드림(남창)
오랜 잣나무를 노래하여 침류대 주인에게 드림(소암)
침류대 주인을 찾았다가 만나지 못하고(소암)
침류대 주인에게 (오산)
차운함(촌은)
집구(소암)
침류대 주인에게 (오산)
차운함(소암)
차운함(촌은)
차운함(월봉 유영길) 2수
차운함(현남) 4수
침류대 즉사(소암)
차운함(현곡 정백창) 2수
차운함(소암) 2수
침류대 언덕 그늘에 붙임(파음)
차운함(촌은)
침류대에서 우연히 지음(소암)
침류대 주인에게 보냄(소암)
침류도원 주인에게 보냄 3수
집구하여 차운함
차운함 2수
차운함 2수
침류대 주인에게 보냄 (쌍천)
차운함(촌은)
차운함(동악) 3수
차운함(구원 이춘원) 3수
차운함(만회) 2수
차운함(낙전 신익성)
차운함(경호)
차운함(백록 신응시) 3수
차운함(시잠) 3수
차운함(반환)
차운함(제호 양경우)
차운함(택당 이식) 2수
동악의 시에 차운함
차운함
차운함(관해 이민구) 3수
차운함(석주 권필)
차운함(월사 이정구) 2수
침류옹이 복숭아를 보내준 데 감사하며(월사)
차운함(창석 이준)
침류대 주인이 용만 보안역에서 시를 보냈기에 (소암)
집구하여 차운함 (동촌 김시국)
차운함(어적) 2수
차운함(택당)
차운함(석담 이윤우) 2수
후서 율원
후서 덕수 이식
후서 이준
[酬唱詩續錄]
침류대부시도서 택당거사
학사들에게 삼가 올림(촌은)
차운함(택당)
차운함(현곡)
차운함(동강 엄성)
차운함(현주 이소한)
차운함(유시 한흥일)
차운함(양강 여이징)
차운함(석문 이경직)
차운함(이하는 학곡에 이어 차운함 홍서봉)
차운함(지봉)
차운함(지천 최명길)
차운함(구원)
차운함(태천 민인백)
차운함(백사 윤훤)
차운함(계곡 장유)
차운함 (죽음 조희일)
석실에 차운함 (김상헌)
차운함(오락만일)
차운함(백주 이명한)
차운함(낙전)
차운함(현고 윤신지)
차운함(사객)
차운함(관해)
차운함(창석)
차운함(모유자)
차운함(만사 심지원)
차운함(동계 정온)
차운함(용주 조경)

영국동 임장도 제영 [부록] 寧國洞林莊圖題詠 [附]
유노인에게 드림(오봉 이호민)
양주의 누원에서 비스듬히 서쪽으로 가면 영국동이 있다. 골짜기 안에는 정암선생의 서원을 중건했고, 골짜기 밖은 큰 길로 이어진다. 79세가 된 유희경의 옛 집이 골짜기의 동북쪽 구석에 있는데, 지금 초막을 지어 여생을 마치려고 했다. 용면 이징의 붓을 빌려 모사해 그림을 만들고, 남곽 상공이 지은 시와 서문을 가지고 와 나에게 보여주면서 화운(和韻)하기를 부탁했다. 그래서 내가 써서 주었다. (고산 유근)
유생이 시정 안에 살면서 십일을 따라 이익을 얻지 않았고, 현대부를 좇아 교유하면서 시와 예로 자신을 다스렸다. 도봉산 아래 여막(廬幕)을 지어 유유자적 했는데, 올해 나이가 일흔 아홉이다. 그러나 걸음걸이는 가볍고 건강했으며, 안색은 어린아이처럼 해맑았다. 내가 그 분의 사람됨을 좋아했 는데, 오늘 와서 시를 구하기에 즉시 지어 6수를 드렸다. (현옹)
유노인의 임장도에 씀(치천 윤방)
내 늙어 글 쓰는 일에도 게을러져 공무를 마치고 돌아오면 생각이 흐릿해져 졸음이 밀려왔다. 때로 산승이 와서 문을 두드리며 시를 부탁하는 것이었 다. 처음에는 소리를 질러 내쫓았는데, 다시 오니 비록 시문이 막혔다는 소리를 면할 수는 없어도 억지로 지어 주었지만 별다른 흥취는 없었다. 유노인이 와서는 예에 대해 말하고 시를 이야기하는데 내용도 알차고 정성 이 가득하여 화기애애한 데다 더구나 시를 부탁하지 않아 더욱 기뻤다. 어느 날 문득 소매에서 시축을 꺼내 보여주는데, 내가 웃으며 말했다. "그대 또한 산승을 흉내내는 거요?" 시축 위에 유거를 그린 그림이 있는데 여산에 초막을 지은 홍취를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다. 마침내 원운에 차운하여 써서 드렸다.(월사)
유노인이 애써 시를 찾기에 현옹 상국의 절구 세 편의 운을 밟아 보내다. (유천 한준겸) 3수
유노인 길이 손에 시축 한 권을 들고 와서 시를 찾는 모습이 참으로 은근 하고 간절했다. 내 재주가 좋고 나쁨을 따지지 않으니 그 정을 뿌리칠 수 없었다. 속초의 비방을 꺼리지 않고 삼가 원운에 차운하여 드렸다. (선원 김상용)
유옹은 신분은 미천했지만 유자의 행실이 있어 자주 나를 찾아왔다. 예에서 의심스러운 부분을 묻는데 이른바 세상에 이로움을 구하는 것이라 내가 이 때문에 존중하여 망형우)가 된 지 오래였다. 어느 날 그동안 쓴 시축을 가져와서 보여주면서 화운을 구했다. 그때 마침 내가 남쪽으로 돌아갈 뜻이 있어 현옹과 남곽 두 분의 시운에 차운하여 유별의 말로 삼았다. (우복 정경세) 2수
지난 을해년 때 처음으로 유생과 알게 되었는데, 당시 내 나이 13살이었고, 유생은 서른을 넘어 있었다. 항상 와서 나를 만나면 활짝 웃으며 대화를 나누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돌아갔다. 지금 백발이 될 때까지 하루가 지난 듯하니 바로 이른바 눈으로 보면 있다는 것이다. 근래 몇 년 동안 시축을 가져와 차운을 부탁하는 것이 간절했는데, 나는 거절하며 말했다. “제가 일찍이 선생을 위해 시와 글을 드린 것이 여러 번이었습니다. 지금 몸도 약해지고 병들었으니 어찌 다시 이 일을 하겠습니까?" 그러자 유생께서 간곡히 말했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미 이루어놓은 것이 시축이 되었으니 그대의 말이 없을 수는 없습니다." 내가 사양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는데, 대개 선생의 도를 좋아하는 성의가 늙어서도 더욱 돈독해진 것이다. 짐짓 반구의 뜻으로 권면하니 선생은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지봉)
유옹 응길은 도심에서 생장하면서 책을 읽고 예를 배워 세속의 말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산 지 여든 다섯 살인데 정신이 강건하여 도를 가진 사람과 같았고, 시 읊기를 좋아하여 지은 작품이 몇 수 있다. 덕수 여고 이식이 서문을 써서 풍성하게 이를 칭송했다. 스스로 말하기를, 도봉산 아래 작은 집을 짓고 여생을 보내며 마치려고 했는데, 자손들의 권유를 받아 작은 화폭에 그림을 그려 그 생각을 담으니 많은 분들이 시를 지었다고 했다. 내가 유옹을 안 지 오래다. 저녁때의 저무는 경치가 어찌 오랫동안 누런 먼지 속에 있겠으며, 나뭇잎이 떨어져 뿌리로 돌아가니 모름지기 스스로 생존해 살아가는 것이 옳을 것이다. 마침내 차운하여 이를 힘쓰게 하고자 한다. (계곡) 2수
유 노인장께서 열흘 전에 찾아와서 시권 속의 작품들을 보여주더니 차운을 부탁했다. 마침 내가 가벼운 병세가 있어 부탁을 들어 줄 여유가 없었다. 어제 서전에서 유 노인장이 무오년 때 절조를 지켰던 업적을 들면서 포상과 은전(恩典)을 품의했는데 성상께서 특별히 2품이나 품계를 올려 남다르게 총애하시니 실로 인륜을 부추겨 올려 절의를 숭앙하려는 풍성한 뜻에서 나온 것이다. 내가 비로소 벌떡 일어나 붓을 잡고 바로 나가 오늘 문득 떠올라 겪었던 생각을 담았는데, 지난 번 산중 별장에 갔을 때의 운치는 말하지 않는다. (학곡)
선군자께서는 만죽 서선생과 막역한 사이였다. 유 노인장께서 오랫동안 만죽선생을 사사하면서 선군자에게도 배웠다. 내가 어렸을 때는 이름을 불러주곤 했는데, 유 노인장은 지금 정수리가 머리가 성글어졌다. 두 세대 육십 년 동안 왕래했으면서도 정의가 아직 쇠해지지 않았으니, 믿을 만한 분이라고 말할 수 있다. 더구나 다른 미덕도 갖추었으니 여러분들이 칭송해 말한 것과 참으로 같다. 그 분을 존중하고 그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으니, 시가 시원찮은 것도 생각하지 못했다. (청음 김상헌) 2수
내게 문장 재주가 없다는 것은 옹도 알고 있는 바이다. 그런데도 소매에 시축을 가져와 시를 구하니 이 무슨 잘못인가. 아무래도 내가 옹의 일을 가장 잘 안다고 여겨 그 전말을 쓰게 하고자 함이겠다. 옹께서 나라가 어지 러울 때 절개를 지켰는데, 나 또한 견책을 당했지만 마음으로는 적이 감탄했 다. 옹의 일이 알려져 포상을 받았을 때 나도 논의에 참여하여 그 일을 관장했으니, 옹을 자세히 알기로는 나만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하물며 이 촌장(村)에 돌아와 여생을 보내는 그림에 대해 어찌 한 마디 하여 드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설사 남이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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